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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요한복음 학자들이 요한복음 자료의 독립설로 기울어진 것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비슷한 모티프를 가지는 단화들의 경우도 너무 다르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브리 성서의 필사자들이 극도로 신중하게 필사하는 것과 같은 전통을 염두에 두면 전해받은 전승을 복음서 저자(들)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어려웠을 것이다. Frey가 Theology and History of the Forth Gospel에서 요한복음의 성령(파라클레토스)의 작업에 대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요한복음 저자(들)가 공관복음서라는 자료를 놀랍도록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행위를 설명하고자 함이다.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의 다른 해석과 이야기의 창의적 재구성이 '성령'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청어람 여성주의성서해석 3분기가 어제 마무리되었다. 바울을 주제로(물론 바울이 쓴 서신서들은 아니었지만) 잡으면서 심적 부담이 컸다.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가진 책들이 아니고 어쩌면 나 역시도 보기 싫은 본문들을 다루기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모객이 잘 되지 않으면 분위기 봐서 이번엔 못하는 걸로 할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만큼 부담되는 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청어람의 엄청난 홍보 전략으로(??) 모임이 성사되었고...나는 마치 멱살잡힌 기분으로 초조하게 모임을 준비했다. 하기 전 이런 마음과는 달리 막상 모임이 시작하면 흥미롭고 좋은 사람들을 알게되고 내 세상이 한뼘은 더 넓어지는 것을 늘 경험한다. 보기 싫어 읽지 않던 본문을 읽게 되었다는(그점이 좋았다는) 참가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
목회서신서들을 페미니스트 비평적 관점으로 분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이 문서들의 수사가 기술적이라기 보다는 규정적 - 즉 당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현실에 반응하여 그것을 바꾸기를 추구함 - 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논쟁과 지침들의 단순한 분석이 허용하는 것보다 문제의 공동체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악과 덕의 목록은 특정한 맥락(특히 기독교적 상황)과 어떤 특별한 연관성도 없는 표준적 목록들이다. 그러나 과도하게 많은 분량을 공동체의 특정 사람들과 집단들의 행동을 교정하는데 쓰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집단)들이 저자가 맞서서 반응하고 있는 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 2) 목(회)자의 눈을 통해 장면을 보거나 그의 관점을 정상적이고 정통인 것으로 취하..
어제 에서 디모데전서를 함께 읽었다. 여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텍스트로 보자면 아주 귀한 디모데전서는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에 여자들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드러내준다. 서신서 저자는 여자들이 예언하고, 가르치고, 지도권을 행사하는 등 ‘남자들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하고 이것을 ‘진압‘하려 하지만, 여자들의 권위 행사를 막으려는 그/그녀의 열렬하면서도 선넘은 시도(“여자는 해산으로 구원을 얻는다”와 같은)는 오히려 이 공동체 여자들의 사역이 얼마나 활발했는지 증거한다. 서신서 저자의 편에서 일종의 ‘질서 잡기’의 시도에 가장 격렬히 저항했던 혹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집단은 ‘과부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부의 명부에 오를 수 있는 ‘진짜’ 과부에 대한 아주 구체..
”바울의 편지들에 관한 해석의 역사는 이 작업을 단 하나의 원래 의미를 찾는 수천 년의 탐구, 즉 마치 역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성배”를 찾아나가는 작업인 양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이 작업을 각 시대와 각기 새로운 정황에 속한 해석자들이 이 본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결코 최종적이거나 수정 불가능한 단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탐색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화는 바울이 (서구) 세계의 문화적 전통 안에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인정받는 한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중단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경전이 이를 받아들이고 묵상하는 교회에 의해 지속적으로 읽히는 한 이 대화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존,M.G. 바클레이, 『단숨에..
“대가리 꽃밭”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가 이것이었다.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식적 자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기독교 대중을 상대로 여성주의 성서해석이라는 것을 한지 어언 2년여. 작은 모임에서 열린 생각과 겸손한 태도를 가진 훌륭한 분들만 만나다 보니 세상은 살만한가 여기기 시작하고 높이 세웠던 가드가 느슨해지고 꼿꼿이 세웠던 허리도 흐느적 거리고 정신은 해이해지고 그랬네 내가. 그간 머리 속이 꽃밭이었네. 시작부터 한결같은 것은 이 자리를 통해 기독교 대중은 물론 한국 신학계에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여성주의 성서해석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 해석이 당연히 포함된다. 해석을 하지 않는 독자는 없으니까. 성향상, 성서해석에서 마구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는 못하며..
초기에 백인 여성주의자들은 대체로 제국주의를 무시했으며 그렇기에 피식민 주체들의 억압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뒷받침해주었다. 반면에 남성들이 주도한 대부분의 3분의 2세계의 해방 운동들은 제국주의가 주된 억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들의 의제를 무시했다. 이러한 입장은 대부분의 3분의 2세계의 탈식민 여성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는데, 양쪽에 친구들과 적들이 있었기 떄문이다. 내가 처한 입장도 이러하다. 이러한 곤경에 처했을 때 내가 묻고자 했던 바는 이것이었다. 그러니까 탈식민 시대에 나뿐만 아니라 해방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모두 가부장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억압에 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서를 읽을 수 있는가? 각각의 억압의 형태를 우리는 어떻게 진지하게, 즉 해방과 정의를 위한 우리의 탐색에 걸맞게 다룰 수..
포함이 해방적이려면 차이의 종속과 불평등을 수반하는 제국주의적 포함과 해방적 포함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무사 두베, 『제국, 성서, 탈식민주의』, 317 팟빵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iTunes : https://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는 언제나 좋아요! #여우신 #여기우리들의신학 #신학
“탈식민화 지대에 속한 여성들은 자신들을 보다 강력하고 주도면밀하게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기 위해 분투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적 억압과 가부장적 억압을 반대하는 구조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방이란 가부장적 억압과 제국주의적 억압 양쪽 모두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말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하는 이유는 제국주의 권력이 세계 경제에 대한 엄격한 통제 그리고 관념과 상품의 분배를 통해 어떠한 종류의 대항 담론이든 간에 분쇄하여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고 자신만이 올바르다고 장황하게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전히 가부장제는 자신을 유지시키고 재생산하는 사회 기구들을 소유해서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 탈식민주의 문학 실천..
*에라스무스에서 로 출판되는 (낸시 프랭큰베리 지음, 이민희 옮김)을 먼저 읽을 기회를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우선 고백하자면, 나는 ‘페미니즘, 종교, 철학’ 이 세 영역 모두에 대해 개론서 두어권 읽은 게 다이고 어느 것도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라니! 읽기 전부터 제목에 제대로 주눅이 들었고, 예상대로 나 같은 독자에게 이 논문은 이해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성서와 세계를 보려고 할 때 부딪히는 현실들과 연결되어 읽히는 부분이 꽤 많았고 그래서 몇번의 ‘아하!’ 모먼트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걸 공유해보려 한다. 아하 #1. 6월 초에 듀크대 신약학자인 더글러스 캠벨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바울학자인 캠벨은 바울의 사상과 공동체 설립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