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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 우리가 길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우리에게 거짓 안도감을 주는 조직들 안에, 우리를 가혹한 심판관으로 만드는 규칙들 안에, 그리고 우리를 안심시키는 습관들 안에 갇혀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우리 문밖에는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코의 복음서 6:37) _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중 - 교회, 공동체를 찾아 정착하기가 이리 어려운지 몰랐다. 교회탓을 하기도 했고, 이상적인 내 탓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내가 원하는 교회는 무..
비극의 비밀: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 강대진 지음, 문학동네, 2013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상관이 없는 것만큼이나 그리스 고전과 내가 무슨 상관인가... 라고 믿으며 오랜 세월을 꿋꿋이 잘 살아왔건만... 분명 신학책이라고 알고 읽는 책에서 자꾸 를 언급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놔... 신학책의 저자가 “독자님, 는 당연히 읽으셨죠?”...라고 전제하는 바람에...읽은 척...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마지막 장까지 끝냈으나 이 찝찝함을 어찌해야 하누? 어이쿠... 내가 어쩌다 신학 공부를 하겠다고 덤벼서... 갈수록 태산이다. 도서관의 그리스 고전 서가를 서성이다가 작품을 읽을 용기는 나지 않아 《비극의 비밀》이라는 그리스 고전 작품 해설로 보이는 책을 뽑아 들었다. 다루고 있는..
시편 9편 13-14절(마소라 14-15절)에 흥미로운 표현이 눈에 띈다. “사망의 문으로부터, 미샤아레 마베트(13) -> 시온의 딸의 문에, 베샤아레 바트-찌욘(14)” 시인은 적들의 미움으로 고통당하며 ‘사망의 문’ 앞에 있는 자신을 끌어올려 ‘시온의 딸의 문’ 앞에 놓아달라고 간구한다. 그곳은 하나님의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곳이며 따라서 주님의 구원이 실현되는 장소이다. 시온의 딸은 보통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성문 앞은 재판의 장소였는데 오늘날, 기독교의 맥락에서는 이 장소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약자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사망의 문’과 같은 장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와 대립 국면을 형성하는 하나님의 생명과 정의와 자비의 공간으로서의 교회가 절실하다. 교회가 ..

H는 이번 학기 에스겔서 수업의 논문을 16장으로 해보겠다고 했다. 에스겔서 16장이 히브리어 중급 기말고사 범위였던 나는 16장을 몇 번이고 읽고 외우고 해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H는 16장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어보기를 희망했다. 나는 H의 계획이 무척 반가웠다. 교수님은 16장에 등장하는 탯줄도 수습되지 않은 채 핏덩이로 버려진 여자아이를 여성 개인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1~20절 본문의 히브리어 해석을 마칠 때마다 속이 울컥거려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에스겔의 표현이 적나라해 질수록 교수님은 에스겔을 변호하셨다. “에스겔이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에스겔 16:1-20의 내용은 그러니까...하나님이 가..
말년의 양식 late style 읽고 있는 책들 중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두 권의 책에서 발견한 ‘말년의 양식’ 1.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R.S.수기르타라자 “탈식민주의적 독해의 실제 …두 번째 예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개념인 ‘말년의 양식’(late style)에서 도움을 받았다. 말년의 양식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방식에 관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 급진적 예술가가 마지막에는 순응주의자로 혹은 그 반대로 될 수 있다. 바오로와 요한의 마지막 글에서 발견되는 모순적 해결책들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 개념을 사용해 바오로와 요한의 글을 조사할 것이다. 초기의 삶에서는 선동가였던 사람이 생의 마지..
오늘, 청어람ARMC 오수경 신임 대표에게서 (전체)메일을 받았다. 박총님의 페이스북에 조용히 ‘좋아요’를 눌렀을 때 그녀가 대표로 선임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과연 이사회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중장년 남성이 포진한 청어람 이사회를 가리키며 어려울 것이라고들 했다. 청어람ARMC 이사회는 그러나 그런 결정을 내렸다. 오수경 대표뿐 아니라 이사회의 여성 비율도 높였다 한다. 그들의 기분좋은 의외성 신선한 그리고 과감한 그리고 적절한 결정. 교회 안 가부장제는 기본 옵션이라는 주장 그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어... 패배감이 긴 그림자를 드리울 즈음 기독교 생태계 중심에서, 그렇지 않다고 (중년)남성 중심의 기독교 조직이 아닌 다른 모습을 우리가 여기서 실험하고 있다! ..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Littor”라는 잡지를 들척이다가 광고에서 발견하고는 대출해 온 책: ⟪행복한 책읽기, 김현 일기 1986-1989⟫, 문학과지성사. 이틀 정도를 읽고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하루에 몇 장씩...아껴가며 읽었다. 일기 형식을 갖춘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자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독자인 내가 그의 죽음을 지연시키고 있다.) 현대신학 수업시간에 ‘흑인신학’의 거두로 배웠던 제임스 콘의 ⟪눌린 자의 하느님⟫을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비평가 선생님은 번역자인 현영학 선생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구해서 읽었다니!! (신학생 주제에 나는 현영학 선생도 모른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인문학자에게도 신학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존..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R.S.수기르타라자, 양권석, 이해청 옮김, 분도출판사, 2019 ‘성서비평’도 어려운데 ‘탈식민주의’라니...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에서 처음 접했을 때...이건 접근하기 어렵겠구나하고는 도전해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은 정말 비추다. 가독성도 떨어지고(번역의 문제일까 아니면 티슬턴의 문제일까?) 각 해석학에 대한 소개와 평가가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의 책을 몇 권만 읽고나서 티슬턴의 피오렌자 해석학 소개를 읽으면 그의 성의없음과 ‘중립’을 가장한 편견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나는 수기르타라자가 누군지 모른다. 사실 이 책도 내가 능동적으로 찾은 책이라기 보다는 동네 시립도서관 신착도서 서가를 살펴보..

‘오를랑’을 알게되다: 오를랑의 테크노바디 한 여자가 수술대에 누워 있다. 때로는 여자의 등이, 때로는 여자의 얼굴이 외과의의 매스에 의해 지퍼처럼 주욱 열리고 있다. 여자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큰 소리로 아르토를 읽고 있다. 수술이 끝나자 여자의 얼굴 양쪽엔 징그러운 뿔이 달려 있다. 나는 오를랑의 수술 퍼포먼스를 텅 빈 미술관에서 혼자 보다 말고, 무릎이 탁 꺾인다. 사람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찬양의 말이 싫었다. 여자는 밥 먹고 잠 자고 화장하고, 그렇고 그런 일에 바치는 시간을 뺀 일생, 50페이지 짜리 시로 남을 수 있을지 말지 한 일생을 남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문화적 상징들이 새겨지고 연출되는 무대가 된 여자의 몸, 의미 부여를 통해 박제..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로즈마리 퍼트넘 통 &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지음, 김동진 옮김, 학이시습(출판), 2019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는 것 또는 지지한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사이의 간극은 아득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성서를 여성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고 싶고, 소위 페미니스트 해석학이라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어하면서도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변변한 지식이 없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여성과 남성이 있지 않겠나. 그런 우리들을 위한 좋은 안내서가 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1995년과 2000년에 ⟪페미니즘 사상⟫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원서의 다섯 번째 개정판(!)은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되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페미니즘의 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