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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여기 우리들의 신학 (185)
여기 우리들의 신학
나는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여성은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배정된 젠더 역할에만 전념해야 했으나 그리스도교는 그에 비해 혁명적으로 해방적인 여성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와 역동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전 경험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본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경우 회당의 경험이 비유대인 그리스도인의 경우 협회의 경험이 중요했을 것이다. Mitternacht & Runesson은 초기 유대인 그리스도 따르미들이 디아스포라 회당이라는 “여성이 다른 회원들과 어느 정도 동등한 조건에서 교류할 가능성과 지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제도 내에서 사회화”되었다고 주장한다.(Mitternacht & Runes..
"오늘날의 바울 학계는 왜 사람들이 가난했는지, 어떻게 바울계 모임들이 경제적 부정의의 문제를 다루었는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대신 우리는 계층 상승이 가능한 개인들과 어떻게 그들이 자신들의 모호한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지 토론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Steven Friesen, "Poverty in Pauline Studies: Beyond the So-Called New Consensus,"JSNT 26:323-61.2004:336, Bruce W. Longnecker, “Socio-Economic Profiling of The First Urban Christians”, After The First Urban Christians: The Socia..

다들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필독서는 몸을 사리게 된다.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알고 있다. 언젠가 꼭 읽어야 한다는 것을. 책장에 모셔두었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를 읽었다. 예상한 것 보다는 어렵지 않았으나 방대한 자료들과 성서를 다루고 있고 바울 서신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않아서 서신을 근거로 전개하는 논지는 저자에게 끌려가게 된 것 같다. 한 번 읽고 이 책은 이런 것이다 쓸 수 있는 실력은 물론 아니고. 방송을 하자면 한 번은 더 읽어보아야 할 듯 하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접근은 바울 언어의 사회적 기능이었다. 예를 들어 '묵시'의 기원이 조로아스터교인가 유대교인가, 제사장 문서인가 서기관 문서인가, 묵시와 종말의 의미(defined meaning)는 무엇인가..

'초대교회' 혹은 '1세기 교회'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그리움은 갈수록 짙어지는듯 보입니다. 최근 출간된 박영호 목사의 에 대해 신나, 번들, 머글, 신꼬가 함께 읽었습니다. 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흥분과 침묵, 질문을 계속 던지는 머글, 처음 등장한 '남자 사람' 신꼬(신학생 꼬꼬마), 반건조가 되다 못해 웨하스 가루처럼 흩어진 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는 더글라스의 명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이 명제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우주적 질서 안에 고유한 자리를 가지고 있음을 함축하는 것 같다. 또한 그 자리들이 높고 낮음이 있을지언정, 우주적 질서를 지탱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중요하다고 가정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더글라스의 명제는 자리들, 혹은 그 자리에 배정된 사람들이나 사물들의 상대성과 상호의존성을 가정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이야말로 차별을 은폐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이다. 실제로는 여성의 사회적 성원권을 부정하면서도 음양론에 의거하여 여성과 남성에게 대칭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좋은 예다. 그러면서 여성이 집 밖을 마음대로 나다니는 것을 금기시한다. 하지만 여성의 ..
논문의 가닥을 잡기 위해 DBpia에서 "누가복음"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수의 관심을 끄는 논문들이 있다. 누가복음이 여성에 대해 우호적 시선을 가진다거나 심지어 최초의 여성해방적 문헌이라던가 하는 식의 주장이 생각보다 지배적인데, 그중 무려 50페이지에 달하는 소기천 교수의 "신약성서에 나타난 내재저자의 여성 경향성: 누가복음을 중심으로"가 단연 눈에 뜨인다. 내 논문의 명확한 논지를 잡기 위해, 그러니까 다소 절박한 필요로 읽기 시작한 글이 누가복음 7장 향유 부은 여인 본문에 도달했을 때, 나는 남성 신학자로서 일정한 권위와 권력과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글쓰기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동시에 자신의 시각과 주장을 ‘여성의 것’으로 가장한 채 얼마나 역겨운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예수의 제자가 된 모든 이들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을 떠날 필요는 없었지만, 억압과 착취의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떠나야 했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가 당연시되는 '집'에 살면서도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을 누리는 '교회'의 삶을 살아야 했다" 박영호,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사회사적 성경읽기』, IVP, (2021): 79 만약, 저자가 해석하는 대로 바울이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 '가부장의 지배와 억압, 폭력과 착취의 공간인 집'과 '평등과 자유와 연대의 공간으로서의 에클레시아'를 구분하고 있다면 바울 보다 더 페미니즘적이기는 어렵다. 가부장적 논리가 지배하는 집 vs. 평등과 민주화의 논리가 지배하는 에클레시아 기원전 594년 솔론은 귀족의..
2021.8-3-8.31 매주 화요일 여성주의성서해석 두 번째 시즌을 진행했다. 참석자 모두 일상이 분주할텐데도 성실하게 참석해주어서 늘 화면이 가득 찼고, 텍스트도 열심히 읽어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어주었다. 시즌 두 번째만에 성서본문(누가복음)을 직접 다루겠다고 계획한 것은 나에게는 벅찬 일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성서본문을 거론하기 시작하자 마자 나는 내가 복음서들의 내용과 특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서의 위험성은 그거다. 잘 모르는데 안다고 너무 쉽게 착각한다는 것. 그래서 초반에 두세 차례 잘못된 정보를 모임에서 언급했고 끝나고 나서 성서를 찾아보고 등골이 서늘...했다. 성서를 중심으로 설을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훈련이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는 경험이었다. 신..
학문적 주제나 신학적 주제로 여자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물론 나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집안의 여자가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자고로 여자는 침묵을 금으로 여기며(닥치고 삼 년 귀닫고 삼 년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까지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녀가 배워야 할 것을 말해주는 남자의 입만 볼 것이지, 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소중한 공론의 시간을 차지하고 권리를 주장한다는 말인가...말세다. 참으로 말세다. 여자들의 발언은 나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지적할 것 투성이다. 입을 열어 말하는 족족 이게 틀렸고 저게 틀렸고 지적하고 가르쳐 주어야 하니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닌데...세상이 변했으니 말하지 말라고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고 참...역시 성가시다. 반면 ..

루이스 마틴의 주장에 근거해 레이몬드 브라운이 주장한 요한공동체의 생성과 소멸의 역사는 너무 과하고, 바클레이가 지적한 mirror reading의 위험성은 수긍이 가지만, 복음서들은 보편 그리스도인들을 타깃 독자로 상정한다는 리처드 보컴의 주장도 어쩐지 허술하고 의심스럽다. Dieter Mtternacht & Anders Runesson의 책에서 발견한 논지...속이 시원하네. "보컴의 주장 중 하나는 (서신서들의 저자들의 경우처럼 ) 복음서의 저자들이 만약 목전의 공동체를 위해서만 글을 썼다면 텍스트를 생산하는데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지와 복음서는 같은 장르가 아니다. 또 우리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였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신약성서의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