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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적 성서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설교가나 종교교육자들은 성도의 신앙을 파괴하지 않을까 두려워 이 학문을 신앙공동체에 개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사제 훈련을 받는)학생들은 호교론적이고 역사적인 패러다임과 더불어 성장했기 때문에 성서의 학문적 해석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 평신도들은 성직자가 이러한 성서학과 그 결과를 자신들에게는 유보시키려고 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진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공관복음서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 여대생들의 반응은 성서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카톨릭 학교의 종교교육에 대한 분노다."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돌이 아니라 빵을』, 김윤옥 옮김, 대한기독서회, 1994, 78 나도 같은 것을..
https://youtu.be/aJzgYSnTX-Q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이민 노동자를 둘러싼 세 가지 계산 중 첫번째 계산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이민노동자들은 노동력의 부족을 아주 특별하게 편리한 방식으로 채워 준다. 그들은 주는 대로 임금을 받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전반적인 임금상승을 둔화시킨다...자본주의는 자본의 거의 무한대의 축적을 필요로 하고 이것은 생산성의 무한대의 증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시장이 언제나 생산과 정확히 일치해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불경기와 경기 신장과 인플레에 이르는 여러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불경기 동안에는 치워 두었다가 경기가 확장될 때만 끌어들일 수 있는 예비 노동력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국내의 조직된 노동계급이 이 예비노동력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똑같이 고통당한다면, 그들은 겅제체제 전체를 끝장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할지..
용어정리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s, TERFs: 트랜스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 1970년대부터는 자기들은 '여성'으로 태어나 늘 여성으로 인정받아 왔으므로(시스젠더) 자기네 삶과 억압 경험은 트랜스 여성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믿는 강경한 페미니스트 하위집단이 생겨났다. 그런 여자들은 지금 TERFs라고 불리지만, 그들이 자신들을 가리킬 때 그 용어를 사용하는 일은 별로 없다. 1970년대 제2세대 페미니즘의 전성기에 메리 데일리, 재니스 레이먼드, 실라 제프리스 같은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 여성을 '침입자'로 간주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을 여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강경하고 적대적인 관점을 취하며 트렌스젠더 정체성의 타당성에 대한 반론을 ..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개인주의 개념의 흥미로운 역사: "개인주의는 새로운 표현으로서 새로운 표상으로부터 생겨났다. 우리 조상들은 단지 이기심만을 알고 있었다. 이기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격정적이고 지나친 사랑으로서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연관시키고 특히 자신에게만 이익을 주려는 경향이다. 개인주의는 사려 있고 평화적인 감정으로서 모든 시민들이 대중들과 거리를 두며,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자신을 고립시키게 한다. 개인주의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 작은 사회를 만들고 나면, 기꺼이 큰 사회는 내버려 둔다."(토크빌, 1984 [1835/1840] 『미국의 민주주의』, 584, 어비네이티, 94에서 재인용) ...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최초로 번역한 헨리 리브였다. 그는 독자들에게 영어에는 해당되는..
"평등이라는 말을 우리는 법적, 정치적 평등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평등으로 이해한다. 실제로 토크빌에 따르면 사회적 조건의 평등은 자손에 대한 균등한 재산 분배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는 모든 사회 체제의 민주화를 알리는 조치이다. 평등에 토대가 되는 것은 모든 개인이 동등한 관심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족 재산의 해체로 인해 가문이나 칭호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분제도의 단절이며, 사회적 불평등의 종말이자 정치적 평등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런 해석은 초월주의 운동에 속하는 19세기의 몇몇 미국 저자들의 텍스트를 통해 강화된다. 특히 너새니얼 호손이 에서 이상주의자 홀그레이브를 통해 말한 바에 따르면, 사회가 개인에게 이들에 상응하는 존중을 표하려 한다면, 모든 사람이 전통과 가문의..
누가-행전에는 비혼 여성들이 많이 나온다. 신약성서에는 과부, 처녀, 이혼녀가 모두 등장하는데, 이들에 대해 누가-행전의 저자 누가와 바울은 비슷한 의견을 피력한다. 누가와 바울은 이들이 비혼으로 남는 것을 장려하고 지지한다. 유대주의, 헬레니즘, 로마문화 모두에서 '과부'가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신명기 법전에서 과부를 돌봐야 한다는 신학적 권고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유대 사회가 이들을 '남자 없는 여자'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잃고 사회적 안정망을 확보하지 못한 완전히 취약한 상태의 존재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어린 여성(12-14세)이 나이든 남자에게 시집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젊은 과부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재혼할 것이 권고 되었다고 한다(아우구..

[여기 우리들의 신학 34회] 이렇게 건조하고 바삭해('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를 읽다) 39년 전에 등장하여 신약학계를 뒤집었으나 한국에서는 2021년에 재판된 책, 초기 기독교 사회사 연구자 웨인믹스의 '1세기 기독교와 도시문화'를 함께 읽었습니다. 건조하고 바삭한 책을 읽고 싶다더니, 물기 하나 없어서 후회했다는 머글, 그래도 촉촉한 부분을 찾아내서 새벽 이슬같은 촉촉한 방송을 만들고팠던 신꼬, 그런 촉촉함은 동의할 수 없었던 신나, 댓글만 읽으러 나온 번들이 함께 합니다.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과부'라는 용어 자체가 과부의 취약한 위치를 반영한다. 어원학적으로 χήρα는 '남편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아내'라는 좁은 의미 외에도 보통 '남자 없이 사는 여자'를 지칭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과부는 'almanah'로 'lm','말을 못하다' 에서 유래했다고 주장된다. 과부는 사회에서 목소리 없이 존재하며, 그녀를 위해 목소리를 내 줄 어떤 이도 없다. 이러한 언어적 설명은 남성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적 소속에 의해 결정되는 가부정적 사회 구조 안에서 남자가 없는 여자는 지위도, 사회적 안전도, 정체성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 과부가 됨으로써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관념을 뚫고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종 그렇듯 자유는 형편이 더..
a widow's position was in reality ambivalent. Iedologically, to become a widow, esepcially in the case of a childelss woman, was considered both in the Jewish and in the Roman-Hellenistic context as a misfortune. For many women, perhaps for most, this was also the case de facto. But at the same time, to be widowed meant greater freedom for a woman than she had ever had either as a young unmar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