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청어람
- 복음주의
-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 예수
- 김선용
- 성서해석
- 양혜원
- 한스 큉
- 바울과 선물
- 조선희 작가
- 돌이 아니라 빵을
- 누가복음
- 러셀 서양철학사
- 여우신
- 여기 우리들의 신학
- 바울과선물
- 이반일리치
- 역사적 예수
- 여성주의성서해석
- 기독교페미니즘
- 바파유
- 피오렌자
- 게르트 타이센
- in memory of her
- 여기우리들의신학
-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
- 크로산
- 바울
-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 신학
- Today
- Total
목록전체 글 (323)
여기 우리들의 신학
바울이 관계한 공동체에서 가시성을 지녔던 여성 리더십이 누가-행전에서는 침묵당하고 지워지는 것을 또렷하게 인식하게 될수록 당혹스러움이 커져간다. 한 편에서는 전투력이 상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복음서와 행전의 저자를 여성혐오주의자로 해석하는 것이 불편하고 너무 큰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여성 리더십이 억눌리고 여성의 목소리가 뮤트되었다는 fact를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무마하고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누가-행전 저자의 이런 글쓰기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David L. Balch의 "Luke-Acts: Political Biography/History under Rome. On Gender and ..

아주 작은 책인데, 산만한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아주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지만 전근대, 근대, 탈근대로의 역사적 변화에 대응하는 가부장적 남성사회의 방식과 여성 억압의 변주되는 형태들을 다루고 있고 그에 맞선 여성들의 지워진 저항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전자는 특히 중요해 보이는데, 여성을 통제하려는 시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거나 거기서 발생되는 부정적 감정을 여성을 희생양 삼아 해소하려는 시도와 실행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빌라 저, 김항섭 역, 분도출판사, (2007), 2018. 167쪽 비판적 신학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해석들 중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측면들..

두 번째 반발(여성의 에클레시아에 대한)은 "역전된 성차별"인데 우리가 in Her name으로 여자들의 에클레시아로 모일 때면 남자들은 "(남자들과의) 상호성"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런 반대는 가부장제의 억압과 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지 않는다. 이 주장은 경솔하게 쉬운 은혜를 들먹이고 성차별이라는 구조적 죄에 대해서는 립서비스로 갚으려 한다. 만약 중남미 아메리카의 가난한 자들이 하나의 민중으로 함께 모인다면 그것을 "역전된 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아프리카인들과 아시아인들이 하나의 민중으로 모인다면 그것을 "역전된 식민주의"라고 부르겠는가? 물론 아니다. 우리가 다음의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착취당하고 억압받은 자들의 결속이 부유한 자들을 (역)착취하거나 백인 남성과 서구 국가들 위에 권력으로 군림하..
양쌤의 이번 글을 읽은 첫인상: 1. 읽을만 하네(적어도 이해가 안되 짜증이 치미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음) 2. 시몬느 드 보봐르, 메를리 퐁티, 피터버거...거대한 이름으로 기선제압? 3. 보봐르와 피터버거, 위고 인용을 보며 - 창조적 전유인가 악의적 전유인가? 4. 서양 철학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용감함, 모든 것이 양쌤에게는 이토록 단순명료하다니, 다시 봐도 놀라움. 이번 글의 제목이 '제2의 성'으로 산다는 것(1)인데 제목이 페미니즘의 냄새를 풍긴다는 점에서 이 떠오른다. 내용이 제목을 배반하는 것이 양쌤의 특징인가보다. 내용만 봐서는 '불러내기'로 시작해서 '불러내기'로 끝나니까 보통은 이럴 경우 무난하고 정직하게 '불러내기'라는 제목을 붙일만도 한데 말이다. 시몬느 드 보봐르가 '인간..
several important methodological rules for dealing with the information of androcentric texts: 1. These texts should never be seen in isolation but always in their immediate textual contexts. 2. These texts should also always be analyzed in their specific social-political context in order to establish their "function". 3. Especially normative texts often maintain that something is a historical f..
서구 문화 전체에 침투한 남성중심주의는 교회에서 남자들이 역사적 주체인지 또는 계시의 대리인인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남자들의 역사적 역할이 아니라 여자들의 역사적 역할이 언제나 문제다. 이곳에서는 남성성이 기준인 반면 여성성은 그 기준으로부터의 탈선(deviation)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적이며 역사적인 주체로서의 사람을 말할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남성'이다. 현실에 대한 서구적 이해와 언어적 표현에서는 항상 남성의 실존이 인간 실존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남성이고 남자는 여자를 그녀 자체로서가 아니라 남성 자신을 기준으로 정의한다. 여성은 자율적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다. 남성은 주체이고 절대자이다. 반면 여성은 타자다." (Simone de Bea..
A biblical theology that does not seriously confront "the patriarchal stamp" of the Bible and its religious-political legitimization of the patriarchal oppression of women is in danger of using a feminist perspective to rehabilitate the authority of the Bible, rather than to rehabilitate women's biblical history and theological heritage.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10th edit..
"어떤 철학자에 대해 연구하는 올바른 태도는 숭상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그 철학자의 이론을 믿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을 때까지 일종의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판적 태도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이제까지 주장하던 의견을 포기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와 흡사하다. 경멸하면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할 수 없고, 숭상하면 비판적 태도를 회복하지 못한다. 두 가지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연구할 만한 가치를 지닌 의견이나 이론을 내놓은 사람은 지성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어떤 주제에 대해 완결된 최종적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다. 어떤 지성인이 우리에게 분명히 불합리해 보이는 견해를 밝힐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견해를 어떻게든 참이라고 입증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
"정치 장의 자율성 증대와 결합한 정치활동의 전문화 과정은 완전히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바, 이제 개인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를 넘겨받은 대변인을 위해 그들 자신이 말할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서는, 정치 장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집단을 형성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개인들이 전문적인 정치 장에 참여하는 데 특수한 능력과 재능을 결여할수록 그들은 전문가들에게 정치를 맡기게 된다. 그래서 정치적 박탈의 위험은 좌파정당에서 오히려 더욱 크다.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이 가장 적은 이들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정당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인민과 완전히 단절될 위험을 무릅쓴다." 존 B. 톰슨, 『언어와 상징권력』 (피에르 부르디외 저/김현경 역), 나남, 2020, 449 여기 ..
지금 돌아보면 이전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은 다분히 근본주의적이었는데, 나는 성서와 목사의 해석을 의심하지 않도록 권고받았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고, 의심은 저급한 수준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질문하지 않고 모든 것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이들은 순도높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었고 권위를 독점한 목사의 칭찬은 그들에게도 일정한 상징적 지위를 부여해 다른 이들이 그들을 지도자로 따르게 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이들은 높아지고, 의심 또는 의문을 가진 이들은 침묵하면서 목사의 모든 말이 관철되는 공동체가 되었다. 일단 인정된 종교적 권위는 무소불위의 힘이 되고 그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전략들도 갈수록 효과적으로 구사되며 신자들의 몸과 정신을 마비시킨다. 신학공부는 내가 경험한 공동체를 객관화시켜 볼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