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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284)
여기 우리들의 신학
A biblical theology that does not seriously confront "the patriarchal stamp" of the Bible and its religious-political legitimization of the patriarchal oppression of women is in danger of using a feminist perspective to rehabilitate the authority of the Bible, rather than to rehabilitate women's biblical history and theological heritage.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10th edit..
"어떤 철학자에 대해 연구하는 올바른 태도는 숭상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그 철학자의 이론을 믿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을 때까지 일종의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판적 태도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이제까지 주장하던 의견을 포기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와 흡사하다. 경멸하면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할 수 없고, 숭상하면 비판적 태도를 회복하지 못한다. 두 가지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연구할 만한 가치를 지닌 의견이나 이론을 내놓은 사람은 지성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어떤 주제에 대해 완결된 최종적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다. 어떤 지성인이 우리에게 분명히 불합리해 보이는 견해를 밝힐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견해를 어떻게든 참이라고 입증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
"정치 장의 자율성 증대와 결합한 정치활동의 전문화 과정은 완전히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바, 이제 개인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를 넘겨받은 대변인을 위해 그들 자신이 말할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서는, 정치 장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집단을 형성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개인들이 전문적인 정치 장에 참여하는 데 특수한 능력과 재능을 결여할수록 그들은 전문가들에게 정치를 맡기게 된다. 그래서 정치적 박탈의 위험은 좌파정당에서 오히려 더욱 크다.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이 가장 적은 이들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정당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인민과 완전히 단절될 위험을 무릅쓴다." 존 B. 톰슨, 『언어와 상징권력』 (피에르 부르디외 저/김현경 역), 나남, 2020, 449 여기 ..
지금 돌아보면 이전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은 다분히 근본주의적이었는데, 나는 성서와 목사의 해석을 의심하지 않도록 권고받았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고, 의심은 저급한 수준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질문하지 않고 모든 것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이들은 순도높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었고 권위를 독점한 목사의 칭찬은 그들에게도 일정한 상징적 지위를 부여해 다른 이들이 그들을 지도자로 따르게 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이들은 높아지고, 의심 또는 의문을 가진 이들은 침묵하면서 목사의 모든 말이 관철되는 공동체가 되었다. 일단 인정된 종교적 권위는 무소불위의 힘이 되고 그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전략들도 갈수록 효과적으로 구사되며 신자들의 몸과 정신을 마비시킨다. 신학공부는 내가 경험한 공동체를 객관화시켜 볼 수 ..
성서에 기록된 바, 세상이 6일에 걸쳐 창조되었다거나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거나 하는 것을 비역사적인 것이라 인정하면서도 신약성서의 비역사성에 대한 지적에 앞에서는 표정을 바꾸거나 움찔하는 것은 왜일까?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예배에 참석해서 아무 생각없이 을 외다가 아...나는 이제 이것을 믿지 않는구나라는 현타가 찾아왔을 때의 당혹스러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동정녀 수태를 믿지 않게 되니, 이런 신앙을 강요하는 사도신경 전체가 권위를 잃게 되었다. 공동체의 '신앙고백'에 참여할 수 없다면 내가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공동체 잔류가 가능한가?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기독교 교회들에서는 '사도신경'이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종의 잣대(canon)이기 때문이다. 주일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해 성도들은 사도신경을 믿기로 다짐하고, 그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기로 합의한다. 이 인정을 기반으..
어제 방송된 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미국인들에 대해 취재 보도했다. 어떤 사람은 의회(아마도 하원)에 나와 백신 접종을 한 자신의 몸에 쇠붙이가 붙는다고 주장하며 시연했는데...사실 붙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백신을 맞으면 666의 코드가 새겨진다고 주장하는 설교자들이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21세기 그것도 미국과 한국에서 이런 미신과 마술적 이야기가 믿어진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를 읽고 있는데, 오늘 오전엔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미국에서도)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된 마녀사냥에 관한 파트였다. 큉은 반복해서 "왜 마녀 망상이 생겨났는가?"하고 묻는다. 그리고 이런 저런 가능한 원인들을 내놓는다. 그 중 나는 이 두 가지에 주목했다: - 남자의..

루터파나 개혁파 정통주의의 신학적 바탕은...오히려 축자적으로 받아들인 성서 구절들이었으니, 그것들은 아주 특정한 교리 문제와 결부되었고, 폐쇄된 철학적, 신학적 체계 안에 끼워넣어졌다. 일종의 성서주의. 로마가 강변하는 살아 있는 로마 교황의 무류성을 독일 땅에서 "종이로 된 교황"의 실제적 무류성으로 대체했으니,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씌어진 성서의 무류성을 맹신했다. 이 성서주의는 현대에 들어와 발전한 역사적 성서 비평을 반그리스도인들의 소행으로 간주하게 될 터였다. 한스 큉 저/이종한 역,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분도출판사, 2002: 762 로마 교황의 무류성이 "종이로 된 교황"의 실제적 무류성으로 대체되다...!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읽기 어려운 많은 본문 중 하나다. 이 비유가 남자들의 세계 그러니까 여행하고, 강도질하고, 때리고, 외면하며 지나가고, 같은 처지의 여행자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는 그런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성의 경험은 보편적 인간 경험으로 제시된다. 혹시라도 세상에 여자 홀로 걸을 수 있는 장소가 설령 있다하더라도 분명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위험하고 고립된 길은 아니다. Jane Schaberg, Women's Bible Commentary, Westerminster John Knox Press, 1998: 370 리베카 솔닛의 이라는 책제목이 떠올랐다. 마음껏 걷고 싶지만 두려움에 포기했던 순간들과 함께. "보행의..
집나가면 개고생인데 무슨 짓이냐 하겠지만, 가족만큼 한 존재를 숨막히게 하는 관계도 드물다. 얼마전 육아 프로그램에 등장한 부모의 '가스라이팅'도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어떻게 사랑이 사랑의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도 할 수 있는가? 너무 자연스럽게 자신을 준거로 설정하고 그것에 근거해 자식마저도 '평가'하고 '교정'하는 이런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물론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적합한 자질들을 갖추어 주고자 한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책임이라 믿는다(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존재를 부정하라고 재촉하면서 그 사랑은 아이들과 어른이 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이런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