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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284)
여기 우리들의 신학
젖어미와 젖무덤 「젖어미」의 주인공 자쇼다는 “직업상 어머니, 어머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브라만인 남편이 사고를 당해 생계를 책임지게 된 자쇼다는 남편을 후원하던 재력가 집안에서 젖어미 제안을 받게 된다. 자신의 젖으로 남편을 공양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음을 알게된 자쇼다는 젖을 팔기 위해 계속해서 임신했다. 이렇게 자신의 젖으로 가정을 부양했다. 다산하고 가족까지 먹여살리는 그녀를 동네 사람들은 여신과 같은 존재로 추켜 세웠으며 그녀도 자신의 능력과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20명의 아이를 낳아 몇 아이들은 죽었지만 50세가 넘어까지 그녀의 젖은 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과 주인집 30명 아이들에게 젖을 먹였다. 그녀의 젖이 이렇게 착즙되는 동안 주인집 며느님들은 아이를 낳고도 아..

구약학회 송년 학술대회에서 어떤 교수분이 발제를 하시다가 언어를 재치있게 사용한 좋은 예라며 이런 빻는 소리를 PPT로 정성스레 줌 화면에 띄우셨다는데, 이런 이야기를 구약학회에서 해도 별 문제가 안되는 현실이 통탄스럽고, 이런 수준의 강사가 섭외된다는 것이 한심스럽고 그렇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이름은 이 예를 실제 설교에서 사용했다는 목사분이신 거 같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쌍팔년도 감성의 교수와 목사들이 아직도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거였나...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
따뜻한 자본주의와 자애로운 가부장제 . . . . . . . . . . . . 이런 개소리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윤금이'를 구글링하자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왔다.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라니...이걸 국가가 주도했고, 인신매매를 통해, 가난에 팔려 소녀들이 이 지옥으로 끌려들어갔다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내가 당혹스럽다. 일본 위안부의 문제는 그나마 이슈가 되고 한국정부는 이랬다 저랬다 하긴 하지만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모양을 취한다. 식민지 국가가 피식민지 여성에게 저지른 폭력은 종종 간과되기는 하지만 필요에 따라 민족 이데올로기를 띠고 강력하게 발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남성이 이 나라의 여성에게 저지른 폭력은 어찌할텐가? 그들은 '국가'와 '민족'의 중흥을 위해 여성들의 몸을 짓밟을 수 있는 권리를 미군에게 일본의 유력자들에게 갖다 바쳤다. 김진경은..

"본문은 의미를 쏟아내는 원천이 아니다. 본문은 의미가 소리내어 말해지는 장소다." 성서를 여성의 시점에서 읽는 것의 부담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공부를 할수록 방법론과 해석사의 권위가 더 무겁게 내려앉기 때문이다. 이걸 내가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정신없고 산만한 미친 자의 목소리가 되지 않고 제정신으로 입성을 갖추고 앉아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공간이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질까? 인정된 방법론을 사용해 나도 그들인 것처럼 그리고 늘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련되고 논리적인 언어로 대화에 동참하고 싶다는 욕구는 커지는 반면,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비난받고 무시당할 것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쌓여간다. 이래서 계보는 중요하다. 개무시와..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가 지향하는 - 대개는 가부장제의 유지, 존속에 기여하는 - 가치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은 서사적 관점이 지니는 '호출(interpellation)'의 능력이다. 독자는 언어로 된 텍스트를 읽으면서 어떠한 정체성 속으로 불려 들어간다. 이 능력에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성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박정애, "근대적 주체의 시선에 포착된 타자들 - 염상섭, 『만세전』의 경우", 송명희,『 페미니즘 비평』, 한국문화사, 서울, 2012, 73-4 텍스트가 가지는 '호출'하는 목소리에 신의 권위가 얹혀지는 것이 성서다. 우리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짐작이 가는가? 성서, 신학, 교회에 관련된 대화는 빠르게 로고스/남성중..
“페미니스트 히브리 성서학 발전이 시작된 후 어언 50년이 지난 지금 페미니스트 성서학자들이 페미니스트 성서학의 다음 단계를 궁금해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의 모든 성서적 여성 캐릭터가 규명되었고 모든 학문적 방법이 적용되었으며 사실상 모든 성서 본문이 그것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해 분석된 이후, 문제는 만약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현상태에 굴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페미니스트 성서학자들이 최근 이 분야를 연구조사하고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Athalya Brenner는 이 분야의 미래에 대해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 페미니스트 성서학이여, Quo Vadis? 무엇이 부르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디로 가기를 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주체의 이러한 모습이 문명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적 행위라고 말한다. 체계의 완벽한 요소로서 존재하는 '완벽한 주체'는 합리성에 근거한 자유 의지, 보편적 가치에 근거한 선, 그리고 정의 등의 이름으로 '스스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즉 주체의 자기 결정권은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자기 유지'를 위한 계몽된 인간의 선택사항이다. 이는 공포에 기반한 능동적 선택사항이다. 자기 유지의 양자택일은 지배할 것이냐 지배당할 것이냐의 문제, 나아가 생존이나 파멸이냐를 선택하는 절박한 순간에 놓이게 된다...근대의 주체는 자기유지의 강박에 사로잡힌 계몽된 주체..
이 노래를 틀어놓고 레위기 24:10-23을 읽어보세요!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