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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284)
여기 우리들의 신학
여태껏 멋도 모르고 해왔던 본문 해석은 수사비평을 어설프게 흉내내고 있던 거였다! 구약 본문 주해가 이번 학기 과제라면 참고하세요! 필리스 트리블의 수사 비평의 실천적 과정: 1. 본문을 읽고 또 읽는다. 다양한 번역본들을 비교하면서, 히브리어를 아는 경우 히브리 본문도 함께 읽어 내려가면서 떠오르는 문학적 질문들이나 의문점들을 기록한다. 2. 본문 읽기가 끝나면 주어진 본문에 관한 학자들의 주석이나 논문을 참조하고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적어놓는다. 학자들의 논문을 읽을 대는 수사비평적 분석에만 한정하지 말고 다양한 성서비평방법의 논문을 읽고 최근의 논문 뿐 아니라 오래된 논문도 다양하게 읽는다. 3.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얻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본문을 보다 깊게 이해하도록 정리한다. 4. 수사학적 용어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삶 형태의 생명이 그러하듯 죽음이 다가오면 자아는 붕괴되고 결국 죽는다. 죽음은 총체적 사건이다. 불멸의 영혼과 같은 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가 아니다. 네페쉬는 소멸점까지 사라진다. 그 때 만약 이 종말의 지점을 넘어서도 네페쉬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며 은혜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처럼 미래의 삶은 하나님의 선물로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닌 새로운 창조다.” (버나드 앤더슨, , 최종진 옮김, 한들 출판사, 503쪽)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
“정경”이라는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거슬리면서도 신경쓰이는 단어다. 대체...정경, 정경의 권위..는 뭘까? 그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 그 권위에 굴복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그 ‘선언’. 아주 허접한 울타리를 쳐놓고 "이거 넘으면 넌 이단”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기독교 시대가 동트기 전후의 세기들에 유대교에 닥친 새로운 위기(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전승 전체의 ‘안정화’와 ‘고정화’를 위한 큰 추진력을 제공했다. 유대교의 생명의 중심인 거룩한 땅의 성전의 상실로 인해 전승이 여러 문화적 영향력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약화되고 생명의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감과 소명의식을 잃어버릴 위험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비평은 더 심화된 이해력을 가지고 성경 이야기를 다시 읽도록 한다.” (버나드 앤더슨, , 강성열, 노항규 옮김,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39쪽) "비평, 비판” 이라는 말을 나는 막연히 어떤 특정한 성경읽기의 반정립 정도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의 용어 사용은 지양되어야 하는데...내가 말하고 싶은 성경읽기와 본문 접근의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를 모른채 “역사비평”이라고 퉁치고 있는건가...그러나 “역사비평”이 프리즘의 보라색과 빨간색처럼 연결성을 가지고 펼쳐져 있는 것이라면, 어떤 해석을 역사비평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상당히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지식과 생각과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흑역사를 남기는 것일텐데...나는 흑역사를 남기는 쪽을 택하..
그리스 비극이나 욥기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을 대처해야만 했다. 그리스 비극적 영웅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 운명의 모호함을 받아들인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말하고 열정적으로 질문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간한다. 이런 두 종류의 몸부림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헬라 문화에서 운명은 인간이나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게 지배하는 세력이다. 그러나 구약의 세계관에서는 사람이 비인격적이고 무자비한 운명의 힘에 사로잡혀있다는 개념이 없다. 삶에 대한 완전히 다른 태도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다. 성서의 하나님은 (고대 그리스의 신들처럼)변덕스럽게 불행을 조성하거나 독단적 폭군이 아니라 신실하신(헤세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 보다 더 훌륭하고 신실하시고 믿을..
*”창세기의 뱀은 말을 했을까?” 라는 질문에 “2500년전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을거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 정도의 지성으로 이룩된 히브리 문학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성경의 역사성(이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을 지켜내면서 문자주의적 해석과 거리를 두려다 보니 아담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나눈 대화의 기록은 인간 저자의 “간증”이 된다(아담의 이야기를 정말 아담이 전했다거나 썼다고 믿는 것과 기독교 신앙이 동의어인가?). 이미 우리가 성서 본문에 대해 차별적 권위를 부여하면서 읽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므로 성서 본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분별해서 읽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과 성서를 전면적으로 비판적으로 읽는 것 사이의 경계가 그렇게 분명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καὶ φυλάξεσθε πάντα τὰ προστάγματά μου καὶ πάντα τὰ κρίματά μου καὶ ποιήσετε αὐτά ἃ ποιήσας ἄνθρωπος ζήσεται ἐν αὐτοῖς ἐγὼ κύριος ὁ θεὸς ὑμῶν (Lev. 18:5 BGT) 나의 프로스타그마타(규례) 와 크리마타(법도) 를 지키고 그것을 행하라.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 안에서 살리라. ὁ δὲ νόμος οὐκ ἔστιν ἐκ πίστεως, ἀλλ᾽ ὁ ποιήσας αὐτὰ ζήσεται ἐν αὐτοῖς. (Gal. 3:12 NA27) 율법은 믿음으로 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 안에서 살리라. *갈라디아서에서 ζαω는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다”라는..
τότε λέγει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αὐτοῦ· ὁ μὲν θερισμὸς πολύς, οἱ δὲ ἐργάται ὀλίγοι· (Matt. 9:37 NA27) 일할 것은 많고 노동자는 적고...완전고용의 세상인가...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θυγάτηρ, ἡ πίστις σου σέσωκέν σε. 마태복음서의 기자는 마가복음의 기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기사에서에서 마태의 것은 생략이 많아서 마태복음만 읽는다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중풍병자를 고치는 기사의 경우 마태는 4명의 친구들이라든가 그들이 군중 때문에 지붕을 뚫고 침상을 예수 앞으로 내렸다거나 하는 상황을 통째로 생략했다. 그래서 2절 “예수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말은 다소 생뚱맞다. προσέφερον 동사 안에 포함된 3인칭 복수 주어를 빼고는 “그들”이 누구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복음서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중에 하나인 혈루병 여인+ 야이로의 딸 기사도 마태는 과감하게 줄였다. 마가(Mk. 5:21-43)와 누가(L..
용서점이 있다는 것을 안 건 부천에 사는 지인 덕분이었다. 내가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용서점과 카카오톡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나보다. 그곳에서 가끔 톡이 왔다. 눈에 띈 책이라는 리스트를 보다보면 내 눈에 띄는 책들도 꽤 있었지만 부천까지 가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엔가 사람들이 단 댓글을 유심히 봤는데 그게 좀 이상했다. 번호만 다는 것이었다(무례하게스리). 그리고 배웠다. 그렇게 번호를 달아 찜하면 서점 주인장이 따로 보관해 두었다가 모아서 구매를 할 수 있단다. 나는 신중하게 책을 골라 두 번에 걸쳐 2권의 책을 찜했다. 그런데 용서점에서 톡이 왔다. 합쳐서 만원이 조금 넘는 이 두 권의 책을 “원하면” 무료배송 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염치불구하고 하루라도 책을 (읽고 싶다기..